“ 상처 위에 다시 서다”
나는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뒤 바로 결혼을 했다.
정읍에서 매형이 운영하던 회사에 다니다 부안에 벽돌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벽돌공장에서 일은 매우 다양했다. 나는 주로 중장비를 이용해 흙을 나르는 일을 주로 했고, 흙을 배합하거나 그 속에 섞여 있는 불숫물이나 나뭇가지 등을 골라내는 작업도 했다.
한 기계에서 두 가지 색의 벽돌을 찍어내는 공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한 작업이 끝난 후에는 기계의 남아 있는 흙과 가루를 깨끗이 제거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색의 가루나 흙이 섞이면 불량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 작업은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고 기계 청소를 담당자가 결근하게 되어 내가 대신 그 일을 하게 되었다. 늘 보아오던 작업이었기에 특별히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기계에 붙어있는 흙을 기계로 털어 내는 중 계속 돌아가는 기계에 손이 눌리어 았었고 기계를 멈추라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기계 소리에 묻혀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해 결국, 오른손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되고 말았다. 그 순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족들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사고로 인한 현실은 냉혹했다. 치료비와 산재 보상금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회사는 개인의 실수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벽이 높았다.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해결했다. 간 법정 다툼 끝에 해결은 되었지만 내 생활은 이 전과는 같을 수는 없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현실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자신감이 함께 무너졌다. 그러나 가족들이 한결같이 곁을 지켜 주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상처는 조금 치유되었다.
지금은 경로당 관리와 청소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송단 김미정 작가
예전처럼 힘을 쓰는 일도 큰 꿈도 꾸지 않지만 내가 할수 있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