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소통마당 비쥬얼
소통마당

언론보도

처음 > 소통마당

노래로 다시 찾은 나의 삶

작성자: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    작성일: 2026-04-07   조회수: 43   

노래로 다시 찾은 나의 삶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주간보호센터와 복지회관을 찾아간다. ‘행복드림단소속으로 어르신들을 만나 노래를 들려드리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든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되찾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노래를 부를 때면 마치 젊은 날 가수가 되고 싶었던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낮에는 집안일을 도우며 지냈고, 밤에는 인가도 나지 않은 야간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이어갔다. 결국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그 시절 주변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잘한다며 가수가 되어보라는 말을 자주 건넸다. 그 말들은 어린 내 마음속에 작은 꿈의 씨앗이 되어 자리 잡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인천으로 올라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후 결혼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평범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장에서 기계 사고로 왼쪽 팔 절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년 가까이 방황과 우울 속에서 지냈다.
그때 홀로 계시던 아버지의 권유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미 스무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지내셨던 아버지와 함께 살며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갔다. 한쪽 팔은 쓸 수 없었지만 두 다리는 멀쩡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바닷가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무허가라는 이유로 결국 접어야 했다.
삶은 또다시 시련을 안겨주었다. 쉰 살이 되기 전, 아내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항암치료와 병원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의료비 지원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병환으로 1년 동안 입원하시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병환으로 1년 동안 입원하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보험설계사로 뛰며 빚을 갚아나갔고, 새만금 가력도에서 경비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견디던 끝에, 아내는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때의 기쁨과 감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무렵 나는 한 가요 콩쿠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뜻밖에도 입상하게 되었다. 잊고 살았던 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후 나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사무국장으로 2년을 헌신하며 일했다. 그 과정에서 1년간 장애인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지역 어촌계장으로서 4년을 성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제 칠순이 된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노래로 그 은혜를 돌려드리겠다고.
지금 나는 행복드림단의 일원으로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박수를 받고, 웃음을 나누고, 때로는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삶은 다시 신바람이 난다.
앞으로도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이십 년이 더 지나도, 나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기를 바란다.

 

방송단 이명례 작가

 

 

 

 

..이 게시물을 블로그/카페로 소스 퍼가기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이전글 노년의 도전, 삶의 활력이 되다 2026-04-07
다음글 꽃비 내리는 날, 개암동에서 만나요. 2026-04-07



작성자 :
내용 댓글쓰기
None 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