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회 향토대학에서는 11월 17일 정읍 동학혁명 유적지와 내장산을 탐방 견학하였다. 노인회 향토대학의 경우 역사와 유적, 각종 기념관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현장학습이다.
1. 동학농민혁명의 배경
1894년 왕정의 부패와 반봉건적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농민혁명이다. 이는 사람 대하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인내천(人乃天) 동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 저변의 개혁이라는 점에 또 다른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개혁은 광해군 때 부안, 보안면 반계(磻溪)마을로 32세 때 이주하신 유형원(1622~1673년)선생이다. 그의 저서 “반계수록”은 이 시대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최초의 실학(實學) 바이블이다. 이 저서를 통하여 조선시대의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거대한 패러다임(paradigm) 전환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인에 ‘치유(治癒)와 개혁(改革)'과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그 후 영, 정조와 헌종 때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기며, 조선사회에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촉구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정약용은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강력하게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만들고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려고 하였다.
-1894년 동학운동은 유형원, 정약용 등 실학사상을 이어받은 사회개혁 외침이었다. 이 외침은 1919년 일제 3.1 운동. 민주화를 부르짖던 4.19 의거의 뿌리가 되었다는 역사학자의 의견도 있다.
그리고 동학정신은 우리나라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빨리 민주화된 뿌리 깊은 기본사상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은빛방송단 김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