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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노휴재

작성자: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    작성일: 2025-05-08   조회수: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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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노휴재 5월 정례회의

어버이날 자축연과 자체연수 와이로강의

 

부안노휴재(재수 충남 김형균 부안운수사 대표)가 지난 75월 중 월례회를 갖고 어버이날을 앞두고 성대한 만찬 잔치와 자체연수 행사를 가졌다.

월례회는 4월 중 수입지출 결산과 봄소풍 결과를 정리하고 기타 토의에 이어 자체연수에서는 재수 충남이 <와이로(蛙利鷺)>라는 제목으로 좋은 강의를 가졌다.

와이로(蛙利鷺)란 제목의 자체연수 자료를 소개한다.

 

와이로(蛙利鷺)

 

누구나 와이로하면 일본말인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다.

고려시대 의종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僥倖)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자고 청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 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唯我無蛙 人生之恨 / 유아무아 인생지한)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 집(이규보 집)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 해서 면담(面談)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 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여 노래 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하기는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 시합을 제의하다니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 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하지 않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白鷺)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白鷺)는 까마귀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 시합에서 까마귀에 패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 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겼다.

 

():개구리 와 - ():이로울 리 - ():백로 로

 

이규보(李奎報)선생 자신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 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白鷺)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궁궐(宮闕)에 돌아와 즉시 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 과거 보는 날, 이규보 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恨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님이 계신 곳을 향해 큰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이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은빛방송단 박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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