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장맛처럼 ~
나의 일자리는 우리 지역에서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각 분야의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시니어 안전 모니터링을 하는 일이다. 매주 다섯 번,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세 시간 동안 현장을 점검하고 안전 여부를 확인한 뒤 일지를 작성해 제출한다. 올해 처음 참여하는 사업이라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사무실의 지도를 받으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위에서 도움이 필요한 수혜 대상자를 추천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을 느끼게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군산에서 지내다 동서의 권유로 부안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남편은 부안읍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접어야 했다. 그 무렵 우리는 논농사를 소농으로 짓고 있었는데, 후계자 신청을 하게 되었고 농어촌 공사에서 세 필지의 농지를 임대받아 15년에 걸쳐 갚아나가는 제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느타리버섯 하우스 여섯 동에 투자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단기간에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입은 기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늘어나는 부채 속에서 남편은 병환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중학생 두 아들과 빚을 남긴 채였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일곱,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여성의용소방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 선택이 내 삶을 얼마나 바꿀지 전혀 알지 못했다. 6년이 지나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활동한 덕분에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나는 그 자리가 너무도 부담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맡겨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용기를 냈다. 트럭을 운전하던 나는 쉰두 살에 야간 중고등학교에 도전했고, 정읍 감곡 중·고등학교에 입학해 배움을 이어갔다. 그 덕분에 6년 동안 소방대장 역할도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
논농사도 성실히 이어갔고, 두 아들은 성장해 가정을 이루었다. 오랜 시간 갚아온 농지 대금도 모두 상환하여 세 필지의 논은 내 이름이 되었다. 마을 부녀회장도 8년간 맡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고 어르신들과 말벗이 되어 드렸다. 그 덕분인지 주변에서는 늘 고맙다는 말을 해 주신다.
우리 집 앞마당은 남향이라 햇볕이 잘 든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장 담그기 시작한다. 자연의 기후에 맡겨 천천히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리면, 사월이 지나 결실의 시간이 온다. 주문한 된장을 실은 택배 차량이 열흘 동안 집 앞을 오가고, 내 통장 잔액도 조금씩 늘어난다. 무엇보다 정성껏 담근 장을 이웃과 나눌 때 큰 보람을 느낀다. 2년 전에는 정리 수납 일을 했고, 성실하다는 입소문 덕분에 지금의 시니어 안전 모니터링 일자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배움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반장 역할까지 맡게 되어 뿌듯하다.
노인 일자리는 나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긍심이다. 나의 성실함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과거 허리디스크와 무릎 수술로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아픔조차 잊게 해 준다. 매월 일정한 수입을 얻는 기쁨도 크다.
장이 익어가듯, 나의 삶도 기다림과 끈기로 익어왔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20년은 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방송단 이명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