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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와 현대판 선비

작성자: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    작성일: 2026-03-25   조회수: 51   

정자나무와 현대판 선비


나의 일자리는 집에서 도보로 삼십 분 거리다.
일주일에 세 번,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한다. 세 시간 동안 동료들과 안부를 나누며 잡초를 뽑고 주변을 청소한다. 이 규칙적인 일자리는 잃어가던 건강을 다시 찾게 해 주었다. 몇 해 전부터 당뇨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아내는 노인회에서 운영하는 일자리를 권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위로는 누님이 두 분 계신다. 둘째 누나와 나는 열네 살 터울이다. 누님들이 시집간 뒤에는 함께 놀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겨울방학이 되면 옆 동네 서당에도 다녔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한자를 익히는 속도도 빨랐다. 초등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 집은 소작농이었고, 임차한 밭이 많아 늘 일손이 부족했다. 억지로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딴 데로 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을 앞 정자나무 그늘로 달려가곤 했다.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부방이었다.
스무 살에 군에 입대했지만, 모친의 병세가 악화하자 부친의 결정으로 중간에 제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어머니는 내가 스물셋 되던 해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 또한 내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뒤따라가셨다. 그해 나는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큰 정자나무가 있는 옆 마을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을 잃은 허전함 속에서도 정자나무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부재로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농번기에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일을 했고, 겨울이 되면 집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정자나무 옆에 있던 우리 집은 작은 서당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훈장 노릇을 했던 셈이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틈만 나면 책을 읽고 한자를 익혔다. 방 한쪽에는 책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나는 농사일은 느린 편이었지만, 책 읽는 습관만큼은 평생 놓지 않았다. 어쩌면 마을 앞 정자나무의 기운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아내는 언제나 나를 믿어 준 든든한 동반자였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기보다, 내가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을 묵묵히 지지해 주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첫아이가 세 살이 되던 무렵, 나는 다시 군에 입대해야 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는 억울함을 따져 보자고 했지만, 사망한 아버지를 욕하는 것 같아 말없이 군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힘든 집안일을 혼자 감당해야 했지만, “법이 우선이니 잘 다녀오라고 말하며 나를 보냈다.
억울한 마음을 안고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정자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흔이 되기 전, 상속받았던 토지를 친척 형님의 사업자금으로 채무 보증을 서게 되었다. 결국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고, 아내는 과감히 상속받은 토지를 처분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는 작은 농지 농사와 품앗이, 바다에서 맨손어업까지 하며 논 세 필지를 마련했다. 다섯 남매의 학업도 모두 책임졌다.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다. 한의사가 된 아이도 있고, 공직에 몸담은 아이도 있다. 내가 평생 책을 읽는 모습만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정자나무처럼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삶 덕분이었을까.

팔순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묏자리 방향을 봐 달라며 지관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줄 때면 작은 자부심도 느낀다. 배우지 못한 삶이었지만, 책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나는 나름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시대의 현대판 선비로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내가 하는 노인 일자리는 마치 취미처럼 즐겁다. 집에만 머물렀다면 마음도 병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십 년 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순까지 건강하게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정자나무가 그 자리를 지켜왔듯, 나 또한 그렇게 오래, 묵묵히 살아가고 싶다.

 

방송단 이명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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