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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더이다

작성자: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    작성일: 2026-03-10   조회수: 14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더이다

 

오늘은 대한노인회 주황색 조끼를 입고 참여자를 찾아 나섰다.

참여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다. 역시 같은 조끼를 입어서인지 쉽게 동참해 주었고

이름표도 달고 다니라고 조언도 해 주었다. 생활안전관리단 허** 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나는 스물두 살에 일곱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어른들이 정해준 인연을 군 복무 중이었던 남편을 휴가 중에 만나 선을 보고, 그해 가을에 결혼했다. 그때 시어머니 나이는 쉰다섯이었고 집안의 중심은 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유독 장남인 남편을 아끼고 의지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며느리인 나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평소 식사량이 많았던 시어머니는 밥을 두어 숟가락을 뜨더니 식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같이 굶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농사일과 집안일해야 했기에 같이 굶을 수가 없어 염치없지만 밥을 먹었다. 그 밥 넘어가는 소리는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밥 먹는 것이 마치 죄인 같았다. 그 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동네 다니면서 내 흉을 보고 다녔고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죽고 싶었다.

시동생은 근방에서 소문난 사고뭉치였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갑자기 개를 두들겨 팼다.

그것을 말리는 시누이도 때리고, 붙잡은 시어머니는 손가락이 부러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새댁이던 나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시동생의 두 번의 결혼은 어렵게 지켜오던 논을 팔아야 했고 그 돈의 대부분은 유흥비로 썼고 얼마 남지 않는 돈으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 어느 해 가을 논에서 나락을 묶다가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미숙아를 낳았다. 내가 귀하지 않아서인지 갓난아이도 축복받지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 어린 생명은 생명줄이 길어서인지 간신이 살아났다.

세월이 흘러 우리 애들도 결혼하고 손주들도 태어났다. 나는 손주들을 보면 귀엽고 예뻐서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도 시어머니한테는 흉이 되었고 나는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참을 수 없어 남편한테 말했다. “이 나이에 내 손주보고 내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냐!” 이젠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했더니 당신이 천사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하면서 한 번만 참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 시어머니는 자식들 집에 몇 년씩 돌아가면서 지내다 요양병원에서 101살에 세상을 떠났다. 면회 하여서 내가 누구냐?”라고 물으면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효자 며느리라고 하셨다. 스물두 살에 시작된 시집살이는 백한 살 시어머니와 삶을 같이했던 세월이었다. 지금은 남편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참고 살아줘 고맙다고 한다.

농사지으면서 수선일, 제사음식 주문, 보험회사 등, 돈이 되는 거라면 다 했지만, 칠 남매의 맏며느리, 삼 남매의 엄마로 대가족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우리 부부의 노후대책은 하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노인일 자리를 신청했었는데 올해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대한노인회 노인 일자리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나는 아파트단지 내 소방차 전용 구역에 차량이 주차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다니면서 생각한다.

살아보니 이런 봄날도 오는구나.”

그동안 마음의 상처도 세월이 씻겨 주는 것 같다. 나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 보련다.

 

 

 방송단 김미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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