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지만 노인 일자리는 처음이라 재미있어요!
나는 내후년이면 90살이 된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는 올해가 처음이라 이제 막 두 달 일한 셈이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일하는 재미가 있다.
나의 친정은 동진면 신리이다. 그 시절에는 자식들을 많이 낳아서 그랬는지 우리 부모님도 아들 넷, 딸 다섯 하여 아홉을 낳으셨고 그중에 나는 여섯 번째이지만 지금은 다 하늘나라로 가시고 나 혼자 남았다.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명이 짧게 타고났다. 하여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러던 차, 어떤 사람에게서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거나 아니면 재취로 가야만 오래 산다”라는 얘기를 들으시고 내가 17살 되던 해에 9살이나 나이가 많은 26살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셨다. 생각하면 재취도 아닌 초혼인 사람과 결혼하고, 단명도 안 하고, 우리 형제 중에 내가 제일 오래 살고 있으니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궁금하다.
17살 색시와 26살 신랑은 이후 66년을 해로하다 5년 전 동네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라 칭송하던 남편은 92세를 끝으로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우리는 3남 3녀를 두었는데, 우리 큰딸은 68살이고 막둥이는 48살이니 41살에 늦둥이를 낳은 셈이다. 어느덧 손주도 13명이나 되었고 모두 좋은 가정을 꾸리고 부모 걱정 안 시키고 잘 살고 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하나같이 나한테 그렇게 지극정성일 수가 없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뭔 시골집이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냐?”라고 놀라는데 그것은 우리 큰아들 솜씨다. 올 때마다 온 집 안 구석구석 다 치우고, 울 안 채소밭도 내 손 안 닿게 알아서 척척 다 관리하니 나는 실상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한 사람이다. 텃밭에 직접 뭐라도 조금 심어 보고 싶지만, 아들 눈치 보느라 손도 못 댄다. 몸 약한 나를 배려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려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게 된 나이 많은 신참이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하는 것만 봤지 나는 꿈도 못 꿨다. 왜냐하면, 나는 온갖 병치레를 다 하느라고 남들처럼 무엇을 해 볼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나의 병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20년 전에 심장 수술을 시작으로 허리와 무릎, 담석 수술을 했고, 3년 전에는 대장암 수술을, 한 달 전에는 백내장 수술도 하였으니 살면서 이렇게 많이 구석구석 아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가끔 그러고도 아직 살아있느냐고 농하는 이도 있지만, 이웃들은 내가 아직은 살 만 한 것을 ‘자식들 잘 둔 덕’이라 한다. 당연한 소리다. 내가 낳은 자식들뿐 아니라, 들어온 사람들도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 나는 소족 끓인 곰국을 좋아해서 자주 먹는데 이것은 우리 큰며느리 덕이다. 내가 수술한 뒤나 평상시나 우리 며느리는 올 때마다 곰국을 끓여 큰 병으로 10개씩 가져온다. 어떤 사람들은 “곰국도 너무 먹으면 안 좋지 않냐?”라고 걱정하지만, 나는 며느리 마음 씀씀이 때문인지 몰라도 곰국만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편안해서 잘 먹고 있다. 다른 며느리들도 올 때마다 갖가지 반찬을 해와서 나에게 권하니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워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찌 생각하면 올해는 내게 참 복이 많은 해처럼 생각된다. 건강도 최근 5년 중에 지금이 가장 활력이 있고 생각지도 않은 일도 하여 약값도 하게 되니 마음만은 젊어진 것 같다.
우리 마을에서는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한 달에 열흘을 일한다. 아침 8시 30분에 나가서 경로당 청소를 먼저 한 후에 다 같이 앉아서 따뜻한 차를 한 잔씩 하면서 쉬었다가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여기저기 아팠던 사람이고 이제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고 다들 배려해 주어서 앉아서 재료를 다듬거나 밥 앉히는 일을 주로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이 반찬이나 설거지를 맡아서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전부터 하던 사람들이라 반찬이든 국이든 척척 잘 하지만 나도 조만간 좀 더 힘을 써 볼 생각이다. 남에게 폐만 끼치면 안 된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출 자신이 없어서 허드렛일만 하지만 나도 내 몫을 해내고 싶다.
우리 마을은 대체로 9명~11명이 식사를 한다. 다른 마을은 점심 한 끼만 하거나 한 달에 열 번만 밥 당번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은 거의 매일 경로당에서 점심과 저녁밥까지 두 끼를 해결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실상 한 달에 몇 번이나 밥 당번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이웃들도 서로 돌아가면서 나처럼 다리가 안 좋은 사람은 앉아서 하는 일이나 청소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요리 담당을 하니 큰 문제가 없다. 서로서로 배려해 주는 좋은 이웃들이다.
처음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자식들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걱정했으나 이웃들도 같이해 보자고 하고 나도 그전부터 그 사람들이 부러운 맘도 있어서 해 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나라고 왜 걱정이 없었을까?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잘했다 싶다.
그동안 나는 수시로 병원 생활을 했고, 집에서도 조심하느라 많이 못 움직이고 거의 방에서 지냈다. 가끔 이웃들이 놀러 오기도 하지만 텃밭도 안 하고, 경로당도 못가니 하루 종일 TV만 보는 날이 많았다. 누구와 얘기 나눌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TV 소리도 듣기 싫었을 때도 있다. 곰국을 좋아하기는 해도 날마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있으면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항시 먹는 약이 있으니, 끼니를 거르지는 않지만 밥맛이 좋은 날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살살 경로당까지 오며 가며 걷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끼니마다 새 밥과 새 반찬으로 차린 상에 이웃들과 다 함께 먹는 밥은 꿀맛처럼 맛있게 느껴져서 식사량이 늘고 체중도 좀 늘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다리에도 조금 더 힘이 생기고 얼굴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자식들의 반대도 심했다. 다 나를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이제는 뭐라 하지 않고 다만 조심하시라고만 당부한다. 그들도 내 표정이 좋아지고 목소리도 힘이 있다고 얘기해 주니 나도 내심 잘했다 싶다.
생각할수록 이 일을 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이제는 일하는 날이 아니라도 웬만하면 경로당에 나가 이웃들과 어울리고 있다. 조금 힘쓰고 나면 적당히 피곤한 것도 좋고, 꼼지락거린 덕에 잠도 편하게 잘 잔다. 무엇보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 약값이라도 벌어 쓰게 되니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나도 남들처럼 이런 일도 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처럼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던 사람에게 일감을 주고 건강과 용돈까지 주니 하루하루가 재미가 있다. 그래서 올해에 거는 기대가 생겼다.
나와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매사 나를 배려해 주는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방송단 김지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