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도 꺾지 못한 ‘도울’의 열정, 부안 매창공원에 피어난 보름달
사라져가는 전통의 맥을 잇는 사람들… 비에 젖은 달집, 희망으로 타오르다 예부터 정월대보름은 설, 추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이었다. 오곡밥을 나눠 먹고 쥐불놀이를 하며 액운을 쫓던 그 시절의 풍경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옛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전북 부안의 매창공원만큼은 예외였다. 음력 정월 열나흘인 지난 2일, 부안 매창공원에서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재현하는 단체‘도울’의 주관으로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아침부터 궂은비가 내려 행사의 의미가 희석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현장의 열기는 비구름을 뚫고도 남음이 있었다.
빗속에 울려 퍼진 농악, 추억을 두드리다 행사의 포문은 ‘풍물놀이 연구회’의 흥겨운 농악이 열었다.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우자, 우비를 입고 행사장을 찾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쪽에서는 떡메치기가 한창이고, 정성스레 빚은 전통주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 속에서 ‘이웃 사촌’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다시금 떠올랐다. 비에 젖은 옷자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은, 이 행사가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임을 증명했다.
‘도울’의 헌신, 비를 뚫고 피어난 노하우 이번 행사를 진두지휘한 김영택(64) 전 회장은 장화와 우비 차림으로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동분서주’했다. 벌써 3년째 보름 행사 때마다 비가 내린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챙기는 그의 배려에서는 전통을 지키는 이의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수년간 쌓인 노하우 덕분에 비바람 속에서도 행사는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날이 어두워지자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달집태우기’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달집이 빗줄기를 이겨내고 불꽃을 내뿜으며 타오를 때, 참가자들은 두 손을 모아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비록 구름에 가려 하늘의 달은 보지 못했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른 듯했다.
전통의 맥, 자손 대대로 이어지길 지금은 점점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지만, 이를 묵묵히 지켜가는 ‘도울’과 ‘풍물놀이 연구회’ 같은 이들이 있기에 부안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현장을 지켜본 한 어르신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비가 와서 고생들 많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 옛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우리 손주 녀석들도 이런 정겨운 풍경을 계속 보고 자랄 수 있도록 이 맥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통을 잇는 이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부안의 달집태우기 불꽃이 매년 더 크게 타올라 우리 자손들에게도 이 따뜻한 정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방송단 김시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