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이, 구순
“내 나이 구십이 넘었어.”
정** 어르신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스무 해 전 자녀들은 모두 혼인해 전국으로 흩어졌고, 곁을 지키던 남편과도 사별했다.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농사일로 얻은 허리 지병은 아직도 남아 있다. 노인 유모차를 끌고 경로당에 나가 보지만 바닥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 한 시간도 못 버티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했다.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서글펐다.
“그래도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여.”
어르신은 말을 이었다. 요양보호사가 주 닷새 찾아와 밥과 국, 기본 반찬을 챙겨준다. 따뜻한 음식이 식탁에 놓이면 마음도 함께 놓인다. 월·수·금이면 비슷한 처지의 어르신이 찾아와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상한 음식은 없는지 살핀다. 약은 잘 챙겨 먹었는지도 확인해 준다.
한 달이면 열흘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러 온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왕** 씨가 정리 수납 일자리로 노노 케어를 맡았다. 1년 전까지는 옆집 아주머니가 이 일을 해 주었지만, 다른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그만두었고, 그 자리를 옆 동네에 사는 왕** 씨가 이어받았다.
“열여덟 살이나 어리지만, 내게는 막내 여동생 같네그려.”
정** 어르신은 그렇게 말했다.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살아온 세월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다고 했다.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고, 자신의 하소연도 잘 들어준다. 아끼던 스웨터와 모시이불을 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간다고 했다.
“앞으로 십 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좋겠어. 치매 안 걸리고, 건강하게. ** 씨랑 이렇게 말벗하면서.”
구순의 나이.
예전 같으면 몸만 남는 세월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다르다. 하루 중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말을 나누고, 웃음을 주고받는다. 정리 수납 봉사는 냉장고 속 물건만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흩어진 하루를 정리하고, 쓸쓸해질 틈을 줄여주는 일이었다.
나오는 길에 정** 어르신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나이야.”
방송단 이명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