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 많은 사람이다
나는 복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는 부모 복, 결혼해서는 아내 복, 늙어서는 자식 복을 누린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천복이 있어서 평생 걱정 없이 편하게 산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남의 손을 빌려 농사를 지었지만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아내는 천성이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먼저 해야 직성 풀리는 성격이다. 그런 아내 눈에 나는 일하기 싫은 소를 억지로 끌고 가서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내는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밭에 뭘 심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다. " 죽고 싶어도 논밭에 뭔가 심고 싶어 못 죽는다"라고 말할 만큼 농사를 향한 마음이 크다.
아들은 "엄마처럼 뼈 빠지게 일 안 하는 서울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산다.” 며 말하기도 하고 딸은 "농사지은 것을 보내면 다시 돌려보낼 테니 제발 그만하라”라고 하면서 "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느냐?”라며 성화를 낸다. 그 어느 해, 아내가 담근 단무지를 서울 처형댁에게 넉넉히 보냈다. 처형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일부 팔기도 하였는데 너무 맛이 좋아 금세 소문이 났다. 처형 가족 먹으려고 몇 개 냉장고에 남겨 놓은 것까지 돈 줄 테니 달라고 하면서 가져갔다. 그다음 해부터는 단무지를 많이 담아 팔아서 목돈을 마련했다. 그 목돈은 작은아들이 국악과에서 대금을 전공하는데 학비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이렇듯 아내는 손맛도 좋았다.
나는 아내가 하는 일에 반대를 안 하는 편이다. 아내가 결정하면 늘 따르고 호응해 준다.
"젊어서 농땡이는 늙어서 보약이다.”라는 말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 크게 아픈데 없이 지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식사도 한 덕분인지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이 없다.
올해 초부터는 대한 노인회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 주변의 폐비닐, 깡통, 병 등을 수거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평생 농사일 외에 정해진 시간에 나가 일하는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나이가 들 수록할 수 있는 일이 줄어 든다고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고맙기만 하다. 아내는 여전히 농사일을 걱정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아내의 부지런함과 나의 선한 마음이 우리 가정에 복을 더해 준다고 한다. 우리 노부부의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마음속으로 바래 본다.
방송단 김미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