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작은 효자, 노인 일자리!
나는 벌써 몇 년째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행안의 ‘부안군 건강생활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9시부터 12시까지 안팎을 두루두루 깨끗이 청소한다. 아직은 날씨가 너무 추워 실내 로비나 화장실을 위주로 한다.
백산면에서 태어나 부안에 산 지도 어언 50년이 다 돼 간다.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아 큰 어려움 없이 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젊어서부터 몸이 안 좋아 가정의 경제는 거의 내가 책임지고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했다. 낮에는 일하러 나가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 살림과 남편을 돌보느라 정작 아이들에게는 많은 신경을 못 써 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는데, 어느덧 그 아이들도 이제 각각 가정을 이루어 예쁜 손주들까지 식구가 많이 늘었다.
남편을 대신해서 살림을 꾸리느라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복이 많은 사람 같다. 몸이 안 좋은 남편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자상하고 힘이 돼 주는 든든한 가장이다. 나는 돌미나리를 비롯하여 남편의 몸에 좋다는 것은 뭐가 됐든 최대한 대접하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남편은 비록 거동은 못하지만 아직도 우리 가정의 듬직한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큰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은 눈물 날 만큼 대단하다. 집에 오면 누구랄 것 없이 남편의 온몸을 마사지해 준다. 어린 손주들도 고사리손으로 할아버지를 위하는 것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나 혼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제는 나도 70살이 넘어가니 때때로 이런저런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하는 일은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인 일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침에 일터에 나오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집에만 있으면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어 부지런한 나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맡긴 작은 텃밭들이 몇 군데 있어서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온갖 정성을 들여 채소들을 가꾸어 이웃들과 나누기도 하고, 일부는 내다 팔기도 한다. 그러나 텃밭 농사는 기쁨도 있지만 때로는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오전에 잠깐 노인 일자리를 나오면 그렇게 홀가분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커피도 같이 마시면 더 맛이 좋은 것 같다.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간식 당번을 했는데, 그때도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 웃음소리나 떠드는 소리도 다 귀여워서 내 손주 보는 것처럼 정성을 쏟았다. 1년 반을 그곳에서 일하고, 그 뒤에 현재 일터로 왔는데 지금도 그때의 어린이집 원장님은 다음에는 꼭 어린이집으로 다시 와달라고 부탁하시니 고마운 마음이다.
엊그제는 눈 덮인 화단만 바라보았지만, 마음은 벌써 봄맞이 준비가 끝났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화단에 풀도 뽑고, 철쭉꽃이 예쁘게 피는지, 비가 안 와서 시드는지. 누가 시키는 사람은 없어도 원래 꽃을 좋아하는 터라 자진해서 늘 풀도 매고 예쁜 꽃이 있으면 한 포기 가져다 귀퉁이에 심어 놓으면 그렇게 뿌듯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명증이 있다. 그래서 작은 소리는 잘 못 들기 때문에 불편한 나나! 상대방이나 한 번씩 답답한 적도 있다. 더러 오해를 사는 일도 있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내가 먼저 “나는 이명증이 있으니 조금만 더 크게 말해 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움도 들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만큼 이후에는 대인관계에 거의 어려움이 없어졌다. 또, 젊어서부터 다양한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한 번씩 무릎이 안 좋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나는 원래 성격이 밝고 활달한 편이라 어딜 가든 동료들하고도 잘 지내니 나오면 즐겁고 시간도 잘 간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버는 이 돈은 남편 약값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 아들딸이 큰 효자라면 이 노인 일자리는 우리 집의 작은 효자이다. 노년의 내가 가족을 잘 돌볼 수 있는 커다란 언덕으로 생각된다.
생각하면, 우리 시어머님이나 남편은 나의 고생을 크게 덜어주거나 큰 도움을 주시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양반들한테 원망하거나 야속한 마음이 별로 없는 이유를 살면서 깨달았다. ‘말을 이쁘게 하고 중립(中立)을 지키면 마지막까지 덕(德)이 온다’이다. 시어머님이나 남편은 항시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나 나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도 소리 내어 크게 혼내거나 탓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지켜보셨다.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어쩌면 내가 일터에서 ‘언제든지 다시 오라’는 말을 듣는 이유도 동료들과 탈 없이 잘 지내고, 여기 직원들과 잘 지내는 이유도 남편과 시어머님의 영향인 것 같다. 몸은 고달팠으나 마음만은 따뜻하게 살아서인지 사람들은 내 얼굴에 그런 고생 흔적이 안 보인다고 할 때 나도 몰래 웃음이 나온다.
건강생활지원센터 1층과 2층에서는 날마다 건강을 위해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말을 이쁘게 하고 중립(中立)을 지키면 마지막까지 덕(德)이 온다’를 가슴에 새기고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쓸고 닦는다.
방송단 김지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