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나는 노인 일자리
나는 마을경로당에서 매주 세 차례, 매월 총 열흘간 점심 식사를 챙겨주는 노인 일자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농한기인 요즘에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25일 동안 마을경로당에서 점심 식사를 신바람 나게 준비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셔 주시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절도 있었다. 결혼 당시 연 80만 원짜리 셋방에서 살았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덤프트럭 할부금과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했다. 늘어가는 채무 속에서 아이들 옷 한 벌 제대로 입히지 못했고 형편이 어려워 자녀들의 돌 사진 한 장도 마련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살아가는 방편으로 남편과 떨어져 서울에서 식당 일을 하였고, 마흔이 넘고부터는 갈비찜과 아귀찜을 메뉴로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시절도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며 얻은 수입으로 두 자녀는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를 무난히 졸업했다. 장남은 치과기공사가 되었고, 차남은 대형마트에 팀장으로 취직해 생활이 안정되었다. 그 덕분에 본가에 주택도 신축할 수 있었다. 이후 자녀들의 권유로 식당 운영은 그만두게 되는데 몇 년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오랜 기간 이어진 식당 일이 누적되어 골다공증이 심해졌고 허리와 가슴 수술을 받으며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일이 없다 보니 마음조차 가라앉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치료 요법으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만 쉬는 생활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던 중 노인 일자리 공고를 보게 되었고 식당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마을경로당에서 점심 식사를 챙겨주는 일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경로당은 원래 두 명이 필요한 자리였지만, 음식을 잘한다는 어르신들의 칭찬과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젊었을 때 힘들게 살아왔기에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분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떠올랐고, 또한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본받을 점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십 년 정도 나의 건강이 허락한다면, 마을경로당에서 신바람 나는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들께 대접하고 싶다.
노인 일자리는 나에게 우울한 마음을 벗어나 기쁨과 보람을 주었고, 다시 웃으며 다닐 수 있는 신나는 일터를 만들어 주어서 고마운 마음이다.
방송단 이명례 작가